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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두차례 수상..할리우드에 반기, 승소 이끌기도
‘아카데미상 수상’ 故 폰테인과 자매, 사이 안 좋아 의절로도 유명

'바람과 함께…'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별세…향년 104세 (파리 EPA=연합뉴스) 아카데미(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자이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해밀턴 윌크스 역으로 출연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104세. 사진은 하빌랜드가 지난 2011년 프랑스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세자르상 시상식에 참석한 모습. leekm@yna.co.kr
‘바람과 함께…’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별세…향년 104세 (파리 EPA=연합뉴스) 아카데미(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자이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해밀턴 윌크스 역으로 출연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104세. 사진은 하빌랜드가 지난 2011년 프랑스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세자르상 시상식에 참석한 모습. leekm@yna.co.kr

(뉴욕=연합뉴스) 이귀원 특파원 = 아카데미(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자이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26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향년 104세.네임드파워볼

드 하빌랜드의 홍보 담당자인 리사 골드버그는 드 하빌랜드가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평화롭게 자연사했다고 밝혔다.

드 하빌랜드는 영국과 미국, 프랑스 시민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1950년대 초반 이후 파리에서 거주해왔다.

로이터통신은 드 하빌랜드에 대해 그동안 ‘할리우드 황금기’의 여배우들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로 평가돼왔었다고 설명했다.

드 하빌랜드는 1916년 일본 도쿄에서 영국인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생후 3살 때 부모는 이혼했고, 드 하빌랜드는 어머니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다.

드 하빌랜드는 1935년 막스 라인하르트의 눈에 띄어 그가 제작한 영화 ‘한여름 밤의 꿈’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4년 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해밀턴 윌크스 역으로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바람과 함께…'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별세…향년 104세 (뉴욕 AP=연합뉴스) 아카데미(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자이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해밀턴 윌크스 역으로 출연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104세. 사진은 하빌랜드의 1963년 모습. leekm@yna.co.kr
‘바람과 함께…’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별세…향년 104세 (뉴욕 AP=연합뉴스) 아카데미(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자이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해밀턴 윌크스 역으로 출연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104세. 사진은 하빌랜드의 1963년 모습. leekm@yna.co.kr

드 하빌랜드는 비비언 리가 연기한 스칼렛 오하라와 대비되는 성격을 지닌 멜라니 역을 차분하게 소화해 큰 호평을 받았다.

‘캡틴 블러드'(1935), ‘로빈 후드의 모험'(1938) 등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드 하빌랜드는 ‘그들에겐 각자의 몫이 있다'(To Each His Own)와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ess)로 1946년과 1949년 각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2008년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국가예술 훈장을, 201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영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각각 받았다.

드 하빌랜드는 거대 할리우드 제작사를 상대로 반기를 들기도 했다.

1943년 워너 브라더스가 계약 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도 자신을 계속 묶어두려 하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당시 캘리포니아 항소법원은 어떤 제작사도 배우의 동의 없이 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며 드 하빌랜드의 손을 들어줬고, 이 판결은 ‘드 하빌랜드의 법’으로 불리기도 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드 하빌랜드의 여동생은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 ‘서스픽션’에 출연했던 고(故) 조앤 폰테인(2013년 별세)이다.

드 하빌랜드와 폰테인은 자매가 모두 아카데미상을 받은 기록을 세웠지만 사이가 나빠 의절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드 하빌랜드와 폰테인은 1942년 나란히 아카데미상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당해 여우주연상은 동생이 폰테인에 돌아갔다. 자매는 1975년 어머니의 별세 이후에는 말도 섞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행정수도 이전..헌법을 되짚어보다

[경향신문]

2015년 당시 세종시의 모습. 2004년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법에 위헌을 결정했기 때문에 행정수도 이전을 위해서는 헌법 개정 혹은 헌재 판례 변경이 필요하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2015년 당시 세종시의 모습. 2004년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법에 위헌을 결정했기 때문에 행정수도 이전을 위해서는 헌법 개정 혹은 헌재 판례 변경이 필요하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행정수도는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해 9월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가 공약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12월 국회는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신행정수도법)안’을 통과시켰다. 재적의원 271명 가운데 찬성 167, 반대 13, 기권 14표였다. 각 정당 당론은 당시 한나라당 찬성 권고, 열린우리당 찬성, 민주당 자유투표였다. 2004년 5월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발족하자 헌법소송이 제기됐다.파워볼엔트리
헌법연구관 출신 이석연 변호사 주도로 김문희·이영모 전 헌법재판관이 참여했다.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맞춰 건설된, 행정수도 아닌 행정도시가 세종특별자치시다. 2005년 3월 국회의원 158명이 찬성한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행정복합도시법)’에 따른 것이다.
정부·여당이 연일 행정수도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16년 전 헌재 결정도 재조명되고 있다. 헌법과 헌재 결정 등을 종합하면 행정수도가 가능한 방법은 헌법 개정 아니면 헌재 판례 변경뿐이다. 판례 변경을 한다면 국민투표를 통한 관습헌법 개정을 허용하는 방향이 유력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한 헌법적인 분석과 문재인 대통령 등의 입장을 7문7답으로 정리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석연 변호사 인터뷰는 이범준 <헌법재판소, 한국현대사를 말하다>에서 인용했다.

1. 여야가 합의하면 행정수도 이전 가능?

“관습헌법, 국회 손 못댄다”
헌재 판결에 여야 합의 한계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행정수도 관련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면 관습헌법을 앞세운 2004년 위헌 판결이 문제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헌재 결정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짐작컨대 그가 참고한 결정문 구절은 “관습법의 존속요건의 하나인 국민적 합의성이 소멸되면 관습헌법으로서의 법적 효력도 상실하게 된다”일 테다. 하지만 당시 결정은 관습헌법의 형성, 유지, 소멸은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가 정할 수 없다고 했다. 관습헌법의 개폐에는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직접민주주의가 작동한다면서 ‘국민적 합의’라는 말을 쓴 것이다.
그래서 헌재는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인 것은 우리 헌법상 관습헌법으로 정립된 사항이며 여기에는 아무런 사정의 변화도 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헌법 개정의 절차에 의하여야 한다”고 했다. 관습헌법은 국회가 손댈 수 없다고 못도 박았다. 헌재는 “우리나라와 같은 성문의 경성헌법 체제에서 인정되는 관습헌법 사항은 하위 규범 형식인 법률에 의하여 개정될 수 없다”고 밝혔다. 여야가 합의해도 누군가 헌법소송을 내면, 기존 결정에 따라 헌법 위반일 가능성이 높다.

2. 국민적 합의 있으면 헌재 결정 변경되나

‘합헌’에서 ‘위헌’은 변경 가능
위헌된 법은 소멸, 재심 불가능

국민적 합의가 확인되면 헌재가 결정을 변경할 수 있다고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말한다. 헌재의 결정 변경은 합헌에서 위헌으로만 간다. 네 차례 합헌 뒤에 위헌이 나온 간통죄가 대표적이다. 이와 반대로 위헌에서 합헌이 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위헌이면 법률이 사라지니 위헌 여부를 다시 심판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위헌으로 없어진 법률을 다시 만들면 어떻게 될까. 박범계 의원은 시각장애인 안마사독점 제도가 위헌에서 합헌이 됐다고 했다. 이 사건은 경우가 다르다. 당초 위헌 결정은 “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중요한 내용이 법률도 아닌 시행령에 있어서”가 중요한 이유였다. 이후 시각장애인 독점 규정이 의료법에 다시 들어가면서 합헌이 됐다. 위헌으로 없어진 법규를 살려낸 게 아니라, 위헌 사유를 해소한 새로운 법규를 만든 것이다.
위헌으로 폐지된 행정수도법 등 법률을 그대로 살리는 반복입법이 가능할까. 비슷한 사례가 없고 학자들 의견도 갈린다. ‘안 된다’는 주장은 “헌재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하는데 국회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김하열 고려대 교수)고 본다. ‘된다’는 주장은 “입법은 미래의 일을 정하는 것인 만큼 변화한 현실에 맞춰 같은 내용을 입법할 수 있다”(이황희 성균관대 교수)고 한다.

3. 성문 아닌 관습헌법 어떻게 개정하나

성문헌법 절차와 동일한 조항
학계선 “국민투표 등도 가능”

대한민국 수도가 서울인 것은 관습헌법이라며 2004년 헌재가 신행정수도법에 위헌을 선언했다. 어떤 법률이 위헌이려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야만 한다. 신행정수도법은 참정권인 국민투표권을 침해했다고 헌재가 제시했다. “이 사건 법률은 헌법 개정 사항인 수도의 이전을 헌법 개정의 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단지 단순 법률의 형태로 실현시킨 것으로서 결국 헌법 제130조에 따라 헌법 개정에 있어서 국민이 가지는 참정권적 기본권인 국민투표권의 행사를 배제한 것이므로 동 권리를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
헌법 130조는 성문헌법 개정 절차를 정한 조항이다. 그런데 헌재가 이 조항을 관습헌법 개정에도 적용하라고 했다. 이로써 관습헌법 개정 절차와 성문헌법 개정 절차가 같아졌다. 위헌 결정의 핵심이면서 가장 비판이 많은 대목이다. 이렇게 되면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헌법재판관 9명이 발견하고 만드는 관습헌법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과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 찬성으로 만드는 성문헌법과 같아진다. 관습헌법 개정은 성문헌법 개정 절차로 해도 되지만, 그보다 쉬운 국민투표나 국회의 법률 개정, 법원의 판례 변경 등으로도 가능하다는 게 학계 설명이다(정연주 성신여대 교수).대한민국헌법

제72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ㆍ국방ㆍ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제130조 제2항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4. 행정수도 위헌 결정, 당시 문 대통령 입장

“전형적인 정치적 판단
두고두고 부끄러운 선례”

문재인 대통령은 헌재의 신행정수도법 위헌 결정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특히 관습헌법이 성문헌법 개정 절차에 따라서만 개정된다는 부분에 의문을 표시했다. 문 대통령은 2009년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문헌법이 있는 상태에서 관습헌법이 존재할 수 있는지, 존재하더라도 어떤 것들이 해당하는지, 서울이 수도라는 것이 해당하는지, 관습헌법도 헌법 130조에 따라 개정하는 것인지 등 의문투성이였다. 그런데 헌재는 그런 부분을 모두 인정해서 교묘하게 결정한 것 아닌가. 허허. (노무현 대통령이 ‘관습헌법은 처음 듣는다’고 한 게 아니라, 이런 맥락에서) 그런 표현을 했다. 헌재로서는 이렇게 가지 않으면 위헌 논리 구성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참으로 교묘하다. 이런 의문에 대해 헌법학계에서 아직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는데, 이 부분은 두고두고 헌법재판소의 부끄러운 선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논리는 몰라도 관습헌법을 들어서 위헌이라 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처음에 제소됐을 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전형적으로 정치적인 판단이었다.”
문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직접 발언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2004년 헌재의 위헌 결정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5. 헌법소원 청구인의 위헌 결정 입장은

“관습헌법은 논리의 비약”
수도 이전 국민투표해야

신행정수도법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석연 변호사는 수도 이전을 헌법 72조에서 정한 국민투표로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소송을 제기한 내용도 이렇게 설명한다.“수도를 이전하려면 국민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서 출발했다. 그래서 핵심으로 생각한 것이 헌법 72조 국민투표에 부치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왜냐하면 수도를 이전하는 것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사안이므로 대통령은 반드시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음으로 주장한 것이 (헌법 130조) 국민투표권이다.”
이석연 변호사는 소송에서 관습헌법을 주장하지 않았다. “관습헌법은 불문헌법이 아니라 성문헌법을 보완하는 제3의 존재다. 불문헌법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영국에서처럼. 그런데 헌재는 불문헌법의 일종으로 관습헌법을 인정하니 (성문헌법과 같이) 개정하라는 데서 문제가 된다. 청구서에 불문헌법이라고 적지도 않았다. 불문율이라고 썼다. 헌재 결론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논리의 비약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소송을 일으킨 이석연 변호사도 소송을 당한 노무현 정부도 관습헌법을 바꾸려면 헌법 130조 개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헌재 결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6. 국민투표 거친다면 행정수도 이전 가능?

2004년 헌재의 결정에는
국민투표 통한 결정도 막아

헌재가 국민투표도 막아놓았다. 2004년 결정에서 헌법 72조 국민투표를 거치는 행정수도 이전도 안 된다고 했다. 여기에는 심각한 논리 모순이 있다. 관습헌법 사멸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헌법 72조 국민투표를 일단 들고는 그 국민투표를 하려면 관습헌법이 사멸되어 있어 한다는 순환논법을 쓴다. “사멸을 인정하기 위하여서는 국민에 대한 종합적 의사의 확인으로서 국민투표 등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 고려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에 이러한 사멸의 사정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중략) 이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헌법 개정의 절차에 의하여야 한다.”
헌재 설명대로 국민이 확신하는 관습헌법이 변화·소멸되었음이 확인됐다면, 구태여 헌법 72조에 의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무리하면서까지 헌법 130조 위반을 선택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적극적이었던 것이 이유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72조 위반도 논리구성이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 조항은 대통령에게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재량을 주고 있다. 재량이란 게 행사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하지 않았다고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느냐는 반론이 있다.

7. 지금 행정수도를 이전하는 방법은

가장 확실한 카드는 ‘개헌’
문 대통령의 개헌안에 포함

정부·여당이 행정수도를 이전하려면 헌재를 뛰어넘거나, 결정을 뒤집어야 한다. 뛰어넘는 방법은 헌법 개정이다. 마침 ‘대한민국의 수도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이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에 있다. 이 조항을 헌법에 넣고 다음으로 수도에 관한 법률을 만들면 된다. 개정 헌법에 수도를 세종시 등으로 명시하는 방법도 있지만 일관성과 명분이 적다. 수도는 헌법사항이 아니라고 노무현 정부부터 얘기해왔다.
다음으로 헌재의 결정 변경을 기대하는 방법이다. 관습헌법 개정 절차에 국민투표나 법률 개정이 포함되면 된다. 정부·여당이 행정수도 이전을 국민투표에 부치든 법률로 추진하든 누군가 이에 관해 헌법소송을 제기하면 헌재는 다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 헌재가 허용하는 방법은 헌법 개정 절차뿐이기 때문이다. 신행정수도법 제정을 택했는데 헌재가 국민투표까지만 가능하다고 한다면, 신행정수도법이 폐지되면서 다시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헌재가 결정례를 완전히 뒤집어 수도 서울은 관습헌법이 아니라고 하는 방법도 있지만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관습헌법 개정 절차만 확대해도 결과가 같은데 헌재 결정의 안정성을 무너뜨릴 이유가 많지 않다.

9회에도 우타석서 밀어내기 볼넷으로 2타점..팀은 승부치기서 6-5로 뒤집기

최지만의 첫 우타석 홈런을 알린 탬파베이 트위터 [탬파베이 레이스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최지만의 첫 우타석 홈런을 알린 탬파베이 트위터 [탬파베이 레이스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왼손 타자 최지만(29·탬파베이 레이스)이 오른손 타자로 등장해 홈런을 쏘아 올리는 진기록을 쓰고 팀의 대역전승에 크게 기여했다.파워볼게임

최지만은 27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즈버그의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열린 2020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홈경기에 1번 타자 1루수로 출전해 4타수 1안타를 치고 2타점을 수확했다.

안타가 곧 최지만의 시즌 첫 홈런이었다. 그것도 우투 좌타인 최지만이 오른손 타석에서 친 만화와도 같은 포물선이었다.

1회 3루수 뜬공, 3회 삼진으로 돌아선 최지만은 0-4로 끌려가던 6회 말 선두 타자로 나와 토론토의 두 번째 투수 좌완 앤서니 케이를 상대할 때 좌타석이 아닌 우타석에 들어섰다.

우타자 헬멧을 쓰고 홈런을 친 뒤 동료와 세리머니 하는 최지만 [USA 투데이/로이터=연합뉴스]
우타자 헬멧을 쓰고 홈런을 친 뒤 동료와 세리머니 하는 최지만 [USA 투데이/로이터=연합뉴스]

최지만은 초구 시속 145㎞짜리 포심 패스트볼이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 잡아챘다.

최지만의 방망이를 떠난 타구는 직선타 형태로 쭉쭉 뻗어가 좌중간 담을 훌쩍 넘겼다.

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홈런이었다.

빅리그 5년 차인 최지만이 오른쪽 타석에서 친 첫 안타이자 첫 홈런이다.

최지만은 케이가 마운드에 오른 3회에도 우타석에 들어섰다가 4구 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 빚을 바로 다음 타석에서 시원한 대포로 만회한 셈이다.

MLB닷컴은 전날까지 빅리그 통산 860타석을 모두 좌타자로만 나섰던 최지만이 오른손 타자로 처음으로 나서 비거리 131m짜리 홈런을 쐈다며 타구 속도는 시속 177㎞로 올해 탬파베이 타자 중 가장 강력한 타구를 날렸다고 소개했다.

최지만은 정규리그를 대비한 여름 캠프 연습 경기에서도 오른손 타자로 나와 2루타를 친 적이 있다.

왼손 투수에게 약한 면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마이너리그에서도 종종 연습했던 일이다.

MLB닷컴에 따르면, 최지만은 마이너리그에서 오른손 타자로 54번 타석에 등장해 타율 0.296을 치기도 했다.

오른손 타자로는 2015년 11월 26일 도미니카공화국 윈터리그에서 마지막으로 안타를 때렸다.

우타자 훈련 소화한 최지만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우타자 훈련 소화한 최지만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최지만은 올해 연습경기에서 우타자로 안타를 쳤을 때 “투수의 훈련을 돕기 위해 우타자로 나섰던 것”이라고 넉살을 부렸고, 케빈 캐시 탬파베이 감독도 “최지만이 정규시즌에서 우타자로 나서는 일은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실제로 최지만이 오른쪽 타석에서 홈런을 치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캐시 감독의 발언도 ‘연막작전’이었음이 드러났다.

MLB닷컴의 후안 토리비오 기자가 경기 후 인터뷰를 트위터로 전한 내용을 보면, 최지만은 캐시 감독이 여름 캠프 중 다가와 스위치 히터로 기용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밝혔다.

최지만은 이날 느낌이 좋아 스위치 히터로 뛰어보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철두철미한 팀의 전략에 따라 ‘스위치 히터’ 최지만이 탄생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7회 2루수 땅볼로 물러난 최지만은 2-4로 끌려가던 9회 말 2사 만루에서 또 한 번 오른손 타자로 타석에 섰다.

자신과 상대하던 토론토 우완 마무리 켄 자일스가 부상으로 왼손 브라이언 모란으로 바뀌자 최지만도 왼쪽 타석에서 오른쪽으로 옮겼다.

이어 볼카운트 3볼 1스트라이크에서 볼을 골라 밀어내기 타점을 올렸다. 우타자로 2타점째를 거둬들였다.

탬파베이는 이어진 만루에서 브랜든 로의 2루수 내야 안타로 극적인 4-4 동점을 이뤄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특별 규정으로 올해에만 연장전에서 주자를 2루에 두고 공격하는 승부치기가 도입된 가운데 토론토가 희생플라이로 1점을 따내 5-4로 다시 앞섰다.

그러나 탬파베이는 연장 10회 말 토론토 일본인 투수 야마구치 슌의 제구 난조로 무사 1, 2루 기회를 얻고 케빈 키어마이어의 우선상을 타고 흐르는 싹쓸이 2루타로 2점을 뽑아 6-5로 대역전승을 거뒀다.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생각할 틈도 없이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죠.”

남해고속도로 1차선에서 쓰러진 운전자를 살리기 위해 앞다퉈 달려간 김해 영운고 역도부가 화제다.

지난 22일 오후 7시10분 경남 김해시 주촌면 남해고속도로 부산 방향 냉정분기점 인근에서 승용차 2대가 추돌했다. 사고를 수습하던 60대 운전자가 갑자기 도로에 쓰러졌다. 응급 상황이었다. 사고현장을 목격한 김해 영운고 역도부 지도자와 선수들이 일제히 카니발 차량에서 뛰어내렸다. 경기도 양구에서 열린 시즌 첫 춘계남자역도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지민호 영운고 코치, 김도희 김해시청 감독, 조영현 선수 등이 구급대가 올 때까지 20분간 심폐소생술을 이어갔다. 운전자는 호흡과 맥박이 살아난 후 병원에 후송됐지만 이튿날 세상을 떠났다.

김해 영운고 역도부 국대 출신 청년 지도자 지민호 코치와 조영현 선수. 남해고속도로에 갑자기 쓰러진 이웃을 살리기 위해 지체없이 달려나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이들의 의로운 행동은 체육계에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김해 영운고 역도부 국대 출신 청년 지도자 지민호 코치와 조영현 선수. 남해고속도로에 갑자기 쓰러진 이웃을 살리기 위해 지체없이 달려나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이들의 의로운 행동은 체육계에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제공=김해 영운고 역도부
사진제공=김해 영운고 역도부

‘남해고속도로의 의인’ 지 코치는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심폐소생술은 운동하는 사람 누구나 배운다. 저 역시 선수촌에서도 배웠고, 현역 시절에도 배웠고, 예비군 훈련에서도 배웠다. 교육이 돼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가능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머리로 아는 것과 몸이 움직이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 지 코치는 “지도자라면, 체육인이라면 누구나 저처럼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다. 모두 사람을 살리자는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1994년생 지 코치는 지난해까지 아산시청 소속으로 제100회 전국체전을 뛰었던 국가대표 출신 1년차 지도자다. 대구 성광고 재학 당시 2012년 전국체전에서 2년 연속 남자 고등부 94㎏급 3관왕에 올랐고 주니어 최고기록과 함께 대한역도연맹 신인상을 수상한 에이스다. 2012년 겨울 태릉선수촌에 입촌해 국가대표로 활약한 그는 스물여섯의 나이에 일찌감치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허리가 아파서 더는 안되겠더라. 딱 100회 체전까지만 뛰고 이른 시기에 은퇴를 결심했다”고 했다.

지도자가 된 첫 해, 코로나19가 창궐하며 7월에야 힘들게 열린 첫 실전, 춘계남자역도대회에서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친 첫 제자들은 눈부신 성장을 입증했다. 중량급 선수들이 모두 50㎏ 이상씩 기록 향상을 기록하며 은메달 6개, 동메달 5개의 호성적을 거뒀다. 기분좋은 귀갓길, 아찔한 사고를 목도한 이들은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누군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생각할 틈도 없이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영운고 에이스’ 조영현 역시 “학교에서 배운 심폐소생술이 생각나서 쓰러진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지 코치는 “우리뿐 아니라 차량 4대 정도가 함께했다. 우리가 심폐소생술을 하는 뒤에서 차량통제를 해주셨다”고 오히려 공을 돌렸다. “부모님이 뉴스를 보신 후 ‘고속도로 1차선에서 뛰어내리다니 제 정신이냐’고 걱정하셨다. 하지만 우리를 도와주신 숨은 조력자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철인3종 선수’ 고 최숙현의 안타까운 죽음 후 전국의 지도자들이 책임을 통감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기, ‘초보 지도자’ 지 코치와 제자들의 의로운 행동은 체육계에 잔잔한 화제가 됐다. 유승민 IOC위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해당 뉴스를 소개한 후 ‘체육인 멋집니다!’라는 한줄을 달았다. 지 코치는 “사건 이후 ‘너도 때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다. 소수의 일이 전체의 일로 비치는 것이 속상했다. 그렇게 때리는 게 말이 안된다. 정말 난감했다”라고 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아이들과 말로 충분히 서로 통하는데 왜 그런 폭력이 필요한가”라고 반문했다.

지도자의 길에 들어서면서 지 코치는 현역의 미련을 떨치고자 인상, 용상 기록도. 선수 시절 사진도 모두 지웠다고 했다. 오직 제자들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코치 1년차,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일까. 지 코치는 “선수들이 기록이 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다”고 했다.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 최고 기록을 세울 때 은사였던 조재관 코치님과 ‘합’이 잘 맞았다. 강요하지 않고 코치와 선수가 같이 한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성적도, 진로도 강요하지 않는다. 선수들의 뜻을 가장 존중해야 한다. 지도자가 처음이라 아이들에게 배울 것이 많다”며 웃었다.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지금처럼 하루하루 즐기면서, 아이들과 공감하면서 함께 열심히 뛰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성적은 땀 흘린 만큼 따라온다.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없다. 같이 열심히 하면 결과는 따라오는 것”이라고 했다.

김해 영운고 역도부 선수들과 지 코치, 김해시청 실업팀 선수들은 지난 3월 코로나19 환자들을 위한 헌혈에도 동참했다.

[OSEN=한용섭 기자]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의 693일 만에 선발 등판은 대참사로 끝났다. 

오타니는 27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O.콜리시움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원정 경기에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마운드에 오른 것은 데뷔 첫 시즌인 2018년 9월 3일 이후 처음. 

최악의 결과로 끝났다. 1회말 첫 타자 마커스 세미엔에게 중전 안타를 맞았다. 이어 라몬 로레노와 맷 채프먼을 연속 볼넷으로 내보내 무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개막전 끝내기 만루 홈런을 친 맷 올슨을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해 선취점을 내줬다. 

투수 코치가 한 차례 마운드를 방문했지만, 오타니의 피칭은 위력이 없었다. 마크 칸하에게 2타점 우전 안타를 허용했다. 무사 1,3루에서 로비 그로스먼에게 또다시 우전 안타를 맞아 스코어는 0-4가 됐다.

그러자 조 매든 감독은 오타니를 강판시키고, 구원 투수를 올렸다.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 잡고 강판 수모를 당했다.

결국 오타니는 6타자를 상대해 3피안타 3볼넷 5실점을 기록했다. 투구 수는 30개, 볼이 절반이 15개였다. 직구 구속은 첫 3타자 상대로는 94마일을 넘지 못했다. 주로 90~92마일이었다. 올슨 상대로 94.7마일(152.4km)이 이날 최고 구속, 스피드가 별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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