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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휴교령 즈음에 쓴 듯
“날 제물로 요구한다는 것 알아”
홍일식 前고대 총장이 발견해 보관
탄생 100주년 맞아 학교에 전달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1965년 9월 쓴 교수직 사퇴이유서. 고려대 제공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1965년 9월 쓴 교수직 사퇴이유서. 고려대 제공

“고려대에 내려진 휴업령 철회가 본인을 제물로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파워볼엔트리

1965년 9월 당시 고려대 문과대 교수였던 시인 조지훈(1920∼1968)은 200자 원고지에 비장한 각오로 글을 써 내려갔다. 모두 181자 분량의 ‘사퇴이유서’였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조 시인의 자필 사직서가 세상에 공개됐다. 고려대는 “조 시인의 제자인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84)이 11일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조지훈 탄생 100주년 추모 좌담회’에서 사퇴이유서를 학교에 전달했다”고 16일 밝혔다.

당시 대학가는 6월 군사정부의 한일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반대 시위가 이어지던 상황. 조 시인 역시 학생들과 뜻을 같이했다. 황순원 박경리 등 당대 문인들과 반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군사 정부는 8월 시위대 진압을 명목으로 무장군인을 대학에 투입했다. 9월 6일부터는 고려대에 무기한 휴교령까지 내렸다. 조 시인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학생들이 하루빨리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직하는 것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다”라고 썼다.

이 사직서는 1968년 5월 조 시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고려대 연구실에 그대로 남겨졌다. 그대로 묻힐 뻔했던 이 자필 서류는 홍 전 총장이 연구실을 정리하다 발견해 50년 넘게 보관해 왔다고 한다. 11일 좌담회에서는 “이 사직서는 제자들을 위해서는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조 시인의 결연한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신규확진 사흘째 200명대.. 대유행 기로
수도권 일주일 평균 99.4명.. 100명 육박
카페·병원 등 집단감염 11월 28건
방대본 “20%만 발열.. 무증상 우려”
17일 丁 총리 회의서 격상 방침 논의
박능후 복지부 장관 긴급브리핑 나서
국방부, 수도권·강원 군부대 1.5단계로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 연합뉴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사흘 연속 200명대를 나타냈다. 대유행으로 번질지 중대 기로에 놓였다. 확산을 부추길 위험요인이 적잖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모임·무증상·겨울철 요인으로 전국적 대규모 확산 위험이 있다”며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증가할 수 있는 대규모 유행위기의 전 단계다. 2∼4주 후 300∼400명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파워사다리

◆일상 속 산발적 지역감염

16일 방대본에 따르면 0시 기준 신규확진자는 223명이다. 코로나19 신규환자는 지난 14일 205명, 15일 208명, 이날 223명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국내 지역발생 상황이 193명으로 200명에 육박한다. 정부는 17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수도권·강원의 1.5단계 격상 방침을 논의해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격상과 관련해 긴급 브리핑을 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긴급 주요지휘관 회의를 열고 수도권과 강원 지역 부대에 17일부터 29일까지 군 내 거리두기를 1.5단계로 격상하기로 했다.

수도권의 최근 일주일(10∼16일) 일평균 확진자수는 99.4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 격상 기준인 100명에 거의 다다랐다. 강원은 일평균 13.9명으로, 1.5단계 격상 기준(10명)을 넘었다. 이밖에 경북(13명), 전남(10명)이 두자릿수를 나타내고 있다. 일상 속 집단감염이 주요인이다. 11월 들어 지난 14일까지 직장, 카페, 식당, 사우나, 학교, 요양병원·시설 등 곳곳에서 신규로 발생한 집단감염은 28건에 이른다. 활동이 많은 40대 이하 확진자 비율이 9월13일~10월10일 38.3%에서 10월11일~11월7일 49.1%로 높아진 것은 일상감염을 반영한다.집단 감염은 대학가와 기도원, 가족모임 등을 매개로 확산하고 있다. 이날 낮 12시 기준 경기도 화성에 있는 수원대 미술대학원과 동아리 관련 누적 확진자는 모두 14명에 달한다. 충북 음성군의 벧엘기도원을 중심으로는 지금까지 총 10명이 확진됐고, 경북 청송군에서는 가족모임과 관련해 지난 14일 첫 환자 발생 후 사흘만에 총 19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다양한 장소에서의 산발적 집단감염은 감염원 규명이 어렵고, 환자 발생 후 대비 조치 범위가 넓어 방역당국이 코로나19 유행을 차단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코로나19 일일 신규확진자가 사흘 연속 200명대를 기록한 16일 서울 성동구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진료 대기를 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코로나19 일일 신규확진자가 사흘 연속 200명대를 기록한 16일 서울 성동구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진료 대기를 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방역 책임은 국민 자율… 무증상 감염도

전문가들이 이번 코로나19 확산 이유 중 하나로 꼽는 것이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이다. 국민이 방역 수칙을 지키는 것을 전제로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편이 진행됐다. 지역사회 코로나19 발생을 ‘0’으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마스크 착용 등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도록 정책 방향을 정했다.

문제는 다수의 책임인 만큼, 누구의 책임도 아니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개개인이 방역 수칙을 지키는지 확인할 수 없기에 통제에 한계가 있다.파워사다리

무증상 감염자가 전파할 위험이 있다. 방대본은 확진자의 20% 정도만이 발열 증상을 보여, 발열 감시만으로 코로나 의심환자를 감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정 청장은 “가장 좋은 것은 자발적인 협력”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같은 강제적 조치를 통해서 사람 간 전파를 차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겨울철 실내 활동 증가… 독감 유행과 겹칠 우려

바이러스가 활발해지고, 사람들의 실내 활동이 늘어나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은 코로나19 방역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바이러스는 0∼10도에서 가장 활동력이 강해진다. 추위를 피해 실내에 밀집하지만, 환기가 부족하고 실내 난방으로 습도가 낮아지면 감염에 취약해진다.겨울은 코로나19와 증상이 비슷해 환자 구분이 어려운 독감이 유행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리노바이러스 등 일반 감기 증상을 일으키는 다른 호흡기바이러스도 점차 늘고 있다.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의사환자수는 10월25~31일 1.9명에서 11월1~7일 3.1명으로 1.6배 증가했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사흘 연속 200명대로 집계되고 있는 16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커피숍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사흘 연속 200명대로 집계되고 있는 16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커피숍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식당·카페 등 4㎡당 1명 이용인원 제한

16일 방역당국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1.5단계로 격상되면 한층 강화된 방역 수칙이 적용된다. 식당·카페 등에선 이용 인원이 시설면적 4㎡(약 1.2평)당 1명으로 제한되고, 직장에서는 부서별 재택근무 확대가 권고된다.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큰 중점관리시설 9종과 일반관리시설 14종 등에서는 철저한 방역하에 영업을 해야 한다. 중점관리시설은 시설면적 4㎡당 1명으로 이용 인원이 제한되는데, 클럽을 비롯한 유흥시설 5종과 방문판매 등 직접판매홍보관, 노래연습장, 실내 스탠딩공연장, 식당·카페 등이 있다.유흥시설에서는 춤추기나 좌석 간 이동 등 위험도가 높은 활동이 금지된다. 직접판매홍보관은 오후 9시 이후 운영이 중단된다. 노래연습장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 없고, 이용한 룸은 소독을 거쳐 30분 후에 재사용해야 한다. 식당·카페에서는 테이블 간 1m 이상 거리를 두거나 좌석·테이블 간 한 칸 띄우기, 테이블 칸막이 또는 가림막 설치 등의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16일 서울 시내 한 PC방 모습. 연합뉴스
16일 서울 시내 한 PC방 모습. 연합뉴스

일반관리시설 중에서도 결혼식장, 장례식장, 목욕장업, 오락실·멀티방, 실내 체육시설 등은 시설면적 4㎡당 1명으로 이용 인원이 제한된다. 학원·직업훈련기관, 이·미용업 등은 인원 제한 또는 좌석 사이 한 칸 띄우기 수칙 중 선택해 준수하면 된다. 영화관, 공연장, PC방, 독서실·스터디카페는 다른 일행 간 좌석을 띄워야 하고, 놀이공원·워터파크는 출입가능인원이 수용가능인원의 절반으로 제한된다.

스포츠 경기 관중 입장은 30% 이내로만 허용된다.직장에서는 부서별 재택근무 확대가 권고되며, 고위험사업장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환기·소독·근로자 간 거리두기가 의무화된다.

지난 12일 오전 광주 동구 장동 모 여자고등학교 교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닫혀있다. 뉴시스
지난 12일 오전 광주 동구 장동 모 여자고등학교 교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닫혀있다. 뉴시스

◆대학가·기도원·가족모임 소규모 집단감염 확산

대학가와 기도원, 가족 모임 등을 매개로 코로나19 소규모 집단 감염이 확산하고 있다.

16일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와 지자체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를 기준으로 경기도 화성에 있는 수원대 미술대학원과 동아리 관련 누적 확진자는 모두 14명에 달한다. 지난 13일 첫 확진자(지표환자)가 나온 이후 접촉자를 조사하던 중 13명이 추가로 양성 판정을 받았다. 전날 고려대에서는 아이스링크를 이용한 동아리 소속 학생 6명이 확진됐다. 전남대에서도 동아리를 매개로 기존 확진자(인문대 학생)와 접촉한 공과대생 2명이 확진됐다.

16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2명이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음악대학 건물에 출입 통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2명이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음악대학 건물에 출입 통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연세대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 캠퍼스 음대 조교 1명과 학생 1명이 지난 13일과 15일 각각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서울 성동구 기숙사에 머무는 한양대 학생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밖에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와 관련해선 5명이 추가로 양성 판정을 받아 누적 확진자가 21명으로 집계됐다. 강서구에 소재한 한 병원과 관련해서도 접촉자 조사 과정에서 7명이 늘어 지금까지 총 17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수도권 외의 지역에서도 감염자가 속출했다.강원 철원군의 한 장애인 요양원 관련 확진자는 5명이 더 늘어 11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강원 지역 교장 연수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도 2명의 추가 감염이 확인돼 누적 확진자는 18명으로 늘었다.

1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연합뉴스
1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연합뉴스

새로운 집단감염의 고리도 확인됐다. 충북 음성군의 벧엘기도원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총 10명이 확진돼 치료를 받고 있다. 경북 청송군에서는 가족모임과 관련해 지난 14일 첫 환자 발생 후 사흘 만에 총 19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군과 검찰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방부에 따르면, 국군복지단 예하인 강원도 인제의 한 부대에서 공무직 근로자 1명이 최근 부대 내 확진자와 접촉한 인원으로 분류돼 검사한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해당 부대 내 확진자는 전날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지금까지 3명으로 늘었다.

서울중앙지검도 서초동 청사에 드나든 외부업체 직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접촉자 47명을 자가격리했다.

이진경·이동수·박수찬·박지원·유지혜 기자, 수원=오상도 기자 ljin@segye.com 

‘삼성전자, 벌크핀펫 특허 침해’ 합의 전말

지난 9월 삼성전자는 최소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모바일 반도체 특허 사용료를 지급하는 데 합의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피시 등에 쓰이는 3차원 트랜지스터 기술인 ‘벌크 핀펫’(Bulk-FinFET)이 대상이다. 이 기술은 지난 2001년 이종호 서울대 교수(당시 원광대 재직)가 발명해 2004년과 2005년에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특허로 등록됐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훨씬 낮은 가격에 기술 사용권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해왔다. ‘자체 기술’이라고 주장하며 이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해오던 삼성전자는 결국 업계에서 가장 비싼 사용료를 물게 됐다.

지난 10월27일에는 미국 특허청 심판원(PTAB)이 이 교수가 발명한 ‘벌크 핀펫’ 특허의 권리가 유효하다고 최종 결정을 내리면서 ‘특허침해 논쟁’이 삼성전자의 패배로 완전히 막을 내렸다. 지난 19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년의 이야기는 한국 대기업들이 일삼는 중소기업 기술탈취 관행의 생생한 현장을 보여준다.

■ “쫓겨나다시피 했던 장면 잊혀지지 않는다” 2001년 12월 이 교수는 당시 재직하던 원광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합작 연구를 통해 벌크 핀펫 기술을 완성했다. 이 교수는 카이스트에 특허 출원을 요청했으나, 카이스트는 국내 특허만 출원하고 국외 특허는 예산상의 이유로 거절한 뒤 국외 특허권을 이 교수에 넘겼다. 이후 경북대로 자리를 옮긴 이 교수는 경북대에도 특허 출원을 요청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기술 상용화를 확신했던 이 교수는 특허출원 직후인 2002년 초 삼성전자에 해당 기술을 설명하며 기술 라이선스(사용허가) 계약과 후속 연구에 대한 공동진행을 제안했다. 삼성전자에 찾아온 첫번째 기회였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 교수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시에 삼성전자는 ‘이건 안 되는 기술’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바꿔 얘기하면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 한 것”이라며 “삼성전자에 가서 2시간 발표하고 쫓겨나다시피 나왔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교와 기업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던 이 기술이 그대로 묻히는 게 안타까웠던 이 교수는 2003년 2월 개인적으로 미국에 특허를 출원했다. 이후 삼성전자뿐 아니라 국외 기업에도 라이선스를 제안하기 위해 전문기관인 ㈜피앤아이비에 특허 라이선스 중개 업무를 위임했다. 피앤아이비가 가장 먼저 접촉한 국외기업은 당시 반도체 분야 글로벌 1위였던 인텔이었다. 인텔은 핀펫 기술에 대한 상용화 가능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인텔이 제시한 라이선스 금액이 너무 적은 탓에 끝내 계약 체결은 무산됐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11년. 인텔이 세계 최초로 핀펫 상용화 기술을 완성하고 제품 생산에 돌입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피앤아이비는 인텔과 접촉해 라이선스 협상을 제안했고 협상 끝에 2012년 9월 100억원의 사용료 계약에 성공했다. 글로벌 대기업 가운데 첫번째 특허 사용자가 된 인텔은 결과적으로 다른 기업들보다 훨씬 싼 사용료를 지불하게 된 것이다. 이후 삼성전자도 2015년 갤럭시에스(S)6 모델부터 이 기술을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피앤아이비는 삼성전자와도 꾸준히 협상을 진행했으나, 삼성전자는 이 교수의 특허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두번째 기회마저 걷어차버린 것이다.

결국 이 교수는 한국 특허의 전용실시권을 갖고 있던 카이스트의 자회사 ㈜케이아이피(KIP)에 미국 특허 소유권을 이전한 뒤 2016년 케이아이피를 통해 미국 텍사스 동부지법에 삼성전자 등을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소송이 제기되자마자 삼성전자는 미국 특허심판원에 이 교수의 핀펫 특허에 대한 무효심판을 제기했다.

■ 애플·인텔은 ‘합의’, 삼성은 ‘버티기’ 기나긴 싸움이었다. 길게 이어진 재판 과정에선 삼성전자가 이 교수가 재직했던 경북대로 하여금 특허 소유권을 주장하도록 부추긴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특허 침해 소송에서 이 교수가 정당한 특허 소유권자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소송이 기각될 수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경북대는 업무상 배임으로 이 교수를 형사고소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살면서 검사를 처음봤다. 정말 마음 고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결과는 무혐의였다. 여기에 더해 삼성전자는 산업통상자원부에 요청해 케이아이피의 ‘산업 기술 무단 유출’ 혐의를 조사하도록 하기도 했다. ‘기술 유출’로 밝혀질 경우 원고 자격이 박탈되는 등 케이아이피가 재판에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조사 역시 ‘기술 유출 혐의 없음’으로 끝났다.

삼성전자의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2018년 6월 미국 법원 배심원단은 삼성전자에 4억달러(한화 약 4460억원)를 배상하라는 평결을 내렸다. 특히 배심원단은 삼성전자가 자신들이 사용하는 기술이 특허를 침해하는지 알고도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고의 침해’라는 판단을 내놨다. 평결 결과가 확정되는 1심 판결에서 ‘고의 침해’가 인정될 경우 배상액이 최대 3배(12억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삼성전자는 합의 없이 버티기에 나섰다.

이듬해인 2019년 3월에는 애플도 벌크 핀펫 특허 사용료 지급에 합의했다. 2018년 케이아이피가 애플의 특허 침해 행위에 대해 한국 무역위원회에 제소하면서 이 특허를 사용하는 아이폰의 수입 금지를 청구한 데 따른 것이었다. 애플도 한국 특허청에 특허 무효 심판을 제기했지만 결국 합의가 이뤄지면서 애플과의 모든 소송은 취하됐다. 애플과의 합의는 인텔과의 합의 시점(2012년)보다 7년이 지나 이뤄졌고 그 기간만큼 더 많은 상품에 특허가 사용됐을 것이므로, 애플의 사용료는 인텔 사용료(100억원)보다 많을 것이라는 게 산업계 안팎의 추측이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삼성전자는 꿈쩍하지 않았다. 2020년 2월 미국 재판부는 삼성전자의 ‘고의 침해’를 인정한 1심 판결을 내놨다. 미국 텍사스 동부지법은 판결문에 “삼성전자가 케이아이피의 특허 기술을 고의적으로 탈취했다”고 밝히며 2억달러(한화 약 2230억원)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종호 교수가 2002년부터 꾸준히 삼성전자에 라이선스 계약을 요청했지만 삼성전자가 이 교수에게 기술에 대한 설명만 듣고 기술을 ‘고의적으로 베껴서’ 사용했다고 판단했다. 삼성전자는 1심 판결 이후에도 “핀펫 기술을 삼성이 개발한 자체 기술”이라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버티던 삼성전자의 태도가 바뀐 건 지난 9월. 결국 케이아이피와 특허 사용료 지급에 합의가 이뤄졌다. 1심 판결의 배상액이 2천억원가량이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대략 절반 수준의 합의금이 지급됐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기술 발명 초기에 가장 좋은 조건으로 기술사용 권한을 얻을 수 있었던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 가운데서도 가장 늦게, 가장 나쁜 조건으로 기술사용 권한을 얻게 된 셈이다.

■ “약자 기술 무시 관습 타파해야” 소송에 나선 케이아이피가 기나긴 재판을 위해 들인 돈도 약 200억원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중소기업이라면 시도조차 힘든 금액이다. 인텔과 애플 등의 사용료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끝까지 버티기 힘들었던 상황이다. 한국 대기업들의 중소기업 기술탈취가 만연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방식의 ‘고사 작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인규 케이아이피 대표는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수한 지식재산의 창출과 이에 대한 공격적인 활용이 활성화돼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우선 국내 대기업들은 경제적 약자와 토종 기술을 무시하는 관습을 스스로 타파해야 한다. 또한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개발 활동을 수행하는 국내 대학들의 특허 관리 체계 선진화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한국 대학의 특허 활용 성과는 낮은 편이다. 지난해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이 발표한 ‘정부 알앤디(R&D) 특허관리 현황 및 시사점: 대학·공공(연)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국내 대학 등의 특허 생산성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특허 활용(기술이전·사업화·창업 등) 비율은 2018년 기준으로 33.7%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 대표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특허의 비중이 높아지도록 특허 창출 전략을 수립하고 공격적인 활용을 하기 위한 전문 역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소속 농민들이 16일 전북도청 앞에 왕겨를 뿌리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들은 농가당 월 5만원씩 지급되는 농민수당을 월 1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핫플레이스’로 각광받으며 외지인 몰려들어 혼잡
통행불편 다툼으로 주민폭행 사건까지..갈등 첨예

전남 나주시 남평읍의 은행나무수목원. 수목원의 유일한 출입로인 농로가 혼잡해지면서 마을 주민들과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수목원 입구에 마을 사람들이 트랙터를 몰고 와 항의 시위를 벌이는 모습.2020.11.14/뉴스1 © 뉴스1
전남 나주시 남평읍의 은행나무수목원. 수목원의 유일한 출입로인 농로가 혼잡해지면서 마을 주민들과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수목원 입구에 마을 사람들이 트랙터를 몰고 와 항의 시위를 벌이는 모습.2020.11.14/뉴스1 © 뉴스1

(나주=뉴스1) 박진규 기자 = “조용했던 마을이 카페 한 곳 때문에 외지인들이 몰려들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입니다. 더구나 마을 이장까지 폭행당해 주민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전남 나주시 남평읍 풍림리와 광촌리 2차로 도로변에는 붉은색 바탕에 강력한 문구의 현수막들이 곳곳에 부착돼 있다.

현수막은 하나같이 ‘불법 영업 수십억 특혜의혹 은행나무수목원, 수목원 가족을 처벌하라’ 등 수목원을 규탄하는 글들이 도배됐다.

80여 가구 120명이 사는 한적한 시골마을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발단은 7년전 광주에서 건설업을 하는 홍모씨(63)가 마을 뒤편 은행나무 숲이 포함된 임야와 산을 매입하면서 시작됐다.

홍씨는 8만2000평에 달하는 땅을 사들인 뒤 나무들을 정비하고 2층 규모의 휴게시설을 지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수목원 등록을 마치고 그해 6월에는 카페를 개업했다.

평소 울창한 숲을 이룬 이곳에는 봄과 가을철 간간이 사람들이 찾곤 했으나, 본격적으로 카페가 운영되면서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광주 도심에서 20분 거리인 이곳이 소위 ‘핫플레이스’로 입소문이 나면서는 평일에도 100~200명, 주말에는 이 일대가 마비될 정도로 사람들이 찾는다.

200대 규모의 수목원 주차장은 밀려드는 차량을 소화하기에 턱없이 부족해, 인근의 학교운동장과 마을회관, 공터 등 주차가 가능한 곳이면 차량이 빼곡히 들어섰다.

특히 수목원은 별다른 진입로가 없이 마을 농로를 통해서만 차량출입이 가능하다 보니 밭일을 나가는 주민들이 혼잡으로 인해 제때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경운기가 이동이 어렵고 일부 주민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외부 차량과 접촉사고가 발생하는 일도 빈번했다.

전남 나주시 남평읍의 도로변에 은행나무수목원을 찾은 차량들이 빼곡히 주차돼 있다. 그 뒤로 수목원을 규탄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다/뉴스1© 뉴스1
전남 나주시 남평읍의 도로변에 은행나무수목원을 찾은 차량들이 빼곡히 주차돼 있다. 그 뒤로 수목원을 규탄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다/뉴스1© 뉴스1

급기야 전 마을 이장인 이모씨(63)가 지난달 11일 수목원 주인 홍씨에게 이 문제를 갖고 따지는 과정에서 홍씨의 아들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이씨는 갈비뼈와 가슴뼈가 골절되고 입 안쪽을 7바늘 꿰매는 중상을 입었다.

이씨는 “카페가 생기고 나서 외부 사람들이 몰려와 주말에는 생지옥 같다”면서 “폭행사건이 일어나고도 사과 한마디 받은 적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반면 카페 운영주이자 수목원 소유주인 홍씨는 주민 이씨가 트랙터를 끌고 와 수목원 입구를 막으면서 시비가 붙었다는 주장이다.

홍씨는 “당시 손님 중에 어린아이가 급히 응급실에 급히 가야 하는 급한 상황이었다”면서 “다투는 과정에서 우리 아들도 목을 다치고 손가락이 찢어졌다”고 반박했다.

또한 “주민들이 매일 확성기를 틀고 영업을 방해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이씨를 폭행과 영업방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곳 수목원은 사람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무료로 개방하고 있으며 관광공사의 가을 비대면 관광지 100선에도 선정된 곳”이라면서 “그런데도 주민들이 저와 가족들을 나쁜 사람으로만 몰고 가 너무 힘들고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전남 나주시 남평읍에 들어선 은행나무수목원 내 카페.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이곳에 카페가 들어서면서 지역 명소로 잡리잡았다. 하지만 진입도로 혼잡을 이유로 지역 주민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2020.11.15/뉴스1
전남 나주시 남평읍에 들어선 은행나무수목원 내 카페.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이곳에 카페가 들어서면서 지역 명소로 잡리잡았다. 하지만 진입도로 혼잡을 이유로 지역 주민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2020.11.15/뉴스1

분쟁이 계속되자 나주시는 사업비 23억원을 들여 마을 입구에서 수목원까지의 농로를 넓히는 도로 확·포장 공사를 지난 6월 발주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도로공사 또한 특혜라는 주장이다.

이씨는 “나주시가 원주민들을 위해 혈세를 사용하지 않고 외지인의 영업을 돕기 위해 길을 낸다”며 “그린벨트 지역인 수목원안에 어떻게 카페를 짓고 영업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나주시는 “수목원 내에는 관련법상 휴게음식점을 설치할 수 있어 그에 따라 카페영업이 가능하다”며 “도로 확·포장은 2016년 다수 주민의 건의서가 들어와 2017년 개발제한구역 주민지원사업으로 선정돼 올해 착공했을 뿐 특혜는 없다”고 밝혔다.

04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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